유럽 여행

서유럽여행 3일차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와 이탈리아 베니치아 (2007.7.29)

여행을 꿈꾸며 2008. 7. 3. 18:26
 

3일차 [2007 7 29()]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 관광

 

7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시내를 향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는 동계올림픽이 두번이나 열린곳이기도 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테레지아 여왕이 사랑한 도시로 발코니를 개조한 황금지붕(2,657장의 금박을 입힌발코니 지붕)과 마리아테레지아 거리 그리고 합스부르크 경울궁전과 별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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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궁전 그리고 황금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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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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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물을 바르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샘물]

 

마리아테레지아왕가에는 16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15번째 자녀인 마리앙투와네트(오스트리아명:마리아 안토니아)로 프랑스에 시집을 가서 나중에 프랑스 혁명때 루이16세와 함께 콩코드광장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는데.....

합스브르크 왕궁은 비엔나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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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지붕의 거리] 맥도날드 뒷편 호텔이 모짜르트가 어려서 투숙한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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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인스브르크는 롤산맥이 등줄기로 자리하고 있으며, 지역은 지금은 인구 15만의 교통요지로,

지역에 강이 흐르는데 인강이 흘러서 옛날에는 로마병사들이 전쟁을 하다가 지쳤을 인강에서 쉬었다가 갔단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자녀가 16명을 두었는데 이웃나라에 정약결혼을 시켜서 국가의 안전을 꾀하였단다.

7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시내를 향했다.

첫번째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모짜르트가 어렸을 머물렀던 호텔을 지나 황금지붕의 베란다를 통과하여 겨울궁전과 별과 그리고 궁전성당을 관광하는데 권순옥 가이드님의 배려로 빵에 소금이 붙어있는 빵을 주셨는데 얼마나 짜던지…. 먹고 난후에 가이드님의 먹는 방법이 소금을 적당이 자기 취향에 맞게 털어낸후 먹어야 한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은 시간은 9시로 국경을 넘을 철책, 검문소, 군인, 경찰, 여권체크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들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단지 국경을 표시하는 안내 표지판만이 국가 경계임을 알려준다.

국경을 넘으니 역이 나온다 국경지역에 존재하는 마을들은 오스트리아로 장을 보고 생활권을 형성한단다.

 

 

이탈리아 농업을 주로 하는데 농산품으로 사과, 포도, 복숭아등을 생산하여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 수출하며, 포도는 와인을 주로 만들어 식용으로는 조금 사용한단다.

12시에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베니스) 도착한다.

베네치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4.8킬로미터의 무솔리니가 건설했다는 자유의 다리 건너자 저만치 바다위에 도시가 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방과 베네치아주의 행정중심지로서, 옛날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다.

베네치아는 북동쪽에서 남서쪽까지 51킬로미터로 뻗은 초승달 모양의 석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도시에 세워져 있는 작은 , 진흙습지, 길이 3킬로미터, 너비 1.5킬로미터의 모래언덕들이 군도를 이룬다.

석호주변으로 145킬로미터 반경까지 포함하는 지금의 도시에는 원래 도시가 있던 섬들을 제외한 주요 10개와 메스트레 마르게라 같은 산업이 발달한 본토 자치도시 2개가 포함된다.

베네치아 주민들은 대다수가 관광업과 유리, 레이스, 직물생산을 하여 관광산업에 종사한다.

베네치아는 많은 운하는 118 사이를 이어주는 수로역할을 하며, 섬들 사이로 중심 수로인 그란데 운하가 2개의 넓은 만곡부 주위를 흘러 도시를 통과한다.

너비 37~69미터 이며 평균수심이 2.7미터인 그란데 운하 주위에는 많은 대저택, 교회, 해상주유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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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섬 지도]

 

19세기까지 안토니오 폰테가 설계한 리알토 다리가 그란데 운하를 가르지르는 유일한 다리였지만, 나중에 2개가 건설되었다.

400 개에 달하는 베네치아 다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감옥과 팔라초 두칼레(도제의 궁전) 사이에 짧게 있는 탄식의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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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카레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베네치아 건축물은 다양해서 이탈리아, 아랍,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마니에리슴, 바로크 양식 등이 모두 나타난다. 수세기 동안 베네치아의 사회, 정치 중심지였던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으로 손꼽힌다.

광장의 3면에는 아치가 이어진 회랑이 줄지어 있고, 높이 99미터인 캠퍼닐리 종루가 있는 동쪽 끝은 황금빛 산마르코 바실리카와 팔라초 두칼레의 분홍빛 정면으로 막혀있다.

광장 입구는 그란데 운하와 넓은 산마르코 저지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산마르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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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루에서 바라본 산마르코 광장]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란데 운하]

팔라초 두칼레에 있는 화려한 방들은 베네치아의 많은 위대한 예술가가 장식한 것이며, 베네치아인이 오랜 세월 동안 수차례의 정복으로 모은 수집품이 산마르코 광장을 메우고 있다. 베네치아에는 역사적·예술적으로 중요한 대저택과 옛 주택이 450여 채 남아 있다. 이 건축물들은 대개 말뚝이나 돌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원래 소유 가문의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 대부분에 사무실과 골동품상점이 들어섰으며 일부는 호텔로 개조되어 영업을 하며 명성을 얻고있다.

 

그란데 운하를 끼고 산타마리아델라카리타의 옛 수녀원, 성당, 상인조합건물에 들어 있는 아카데미아는 주요미술관으로서 이곳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아카데미아 소장품 가운데 일부는 봉사단체 조합들인 스쿠올레가 제공한 것으로, 이 조합들 중 2개가 지금까지도 장식품과 그림을 옛 모습대로 완전히 복구한 원래의 조합건물을 사용하면서 자선단체 활동을 하고 있다.

1430년 도미니쿠스 수도회가 헌당한 산티조반니에파올로 교회는 주민들이 산차니폴로 교회라고 부르기도 하며 조반니 벨리니가 제작한 폴리프틱(성단의 배후 등에 4매 이상되는 패널을 이어 맞춘 화상)과 파올로 베로네세가 제작한 천장화가 눈길을 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 13세기에 세운 산타마리아데이프라리에는 화가 티치아노가 묻힌 웅장한 무덤과 함께 그의 〈성모승천〉<페사로 마돈나〉 등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그밖에 훌륭한 교회 건축물로 일레덴토레·산조르조마조레·레치텔레 교회 등이 있다(→ 베네치아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는 음악으로도 유명한데, 음악은 도시의 상업적 세력이 쇠퇴하면서 더욱 중요해졌다.

오페라 형식의 선구자라고 할 만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최초의 오페라 〈프로세르피나 라피타 proserpina rapita〉를 작곡해서 베네치아에서 공연했다.

또 주세페 베르디, 조아키노 로시니를 비롯해 보다 최근에는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같은 유명한 예술가가 많은 오페라를 만들어 이곳 라페니체 극장에서 공연했다.

홍수, 침강, 기타 여러 가지 자연현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온 옛 건축물과 다른 예술품의 노후화가 1950년대 초반부터 내연기관 배기 가스와 가정·산업 매연 같은 대기오염 때문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1960년대 중반에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과학적·기술적 방법을 이용해 유서깊은 베네치아 시를 구하자는 전세계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도시가 범람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방벽이 표본실험에 들어갔다

베네치아에서의 교통은 주로 수로를 이용한 것이며,

실제로 수상 택시와 버스, 적색연화선, 경찰쾌속선, 유명한 수동식 곤돌라 등 모든 형태의 수상운송기관이 운하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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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의 교통수단 곤돌라]

 

도심에서 자동차를 모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간선도로를 타고 구시가까지 들어온 자동차는 시 외곽에 마련되어 있는 주차장에 세워놓아야 한다.

이 간선도로를 따라 철도교량이 놓여 있다. 항공편은 마르코폴로 국제공항에 집중되어 있으며, 시로 가는 승객을 수송하는 모터보트가 있다. 인구 277,305(2000년 기준).

앞으로 백년 정도면 베네치아 도시는 바닷물에 잠길 것이라 한다.

지금도 매년 9월에서 10월경이면 산마르코광장이 바닷물에 잠기고 있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도 타고 맛있는 이탈리아 정통 스파게티도 먹고 성당,유적및 유리세공 가게들을 둘러보고 다시 자유의 다리를 건너 시내로 나와 호텔에 여장을 푼다.

물의 도시는 진흙뻘에 나무를 수없이 박고 일종의 파일인 셈이다. 그리고 자갈들과 대리석으로 다져서 기초를 이러루었다고 한다.

베네치아를 설명해주는 현지가이드는 남자인데 임신 8개월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한다.

지금은 오레라를 전공해서 공부를 하며 짬짬이 현지가이드를 하는데 재미가 있게 설명해주고 우리를 많이 웃음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베네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섬이 있어서 파도를 막아주고 거기에서 베니스 미술대전이 열린다고 한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고 20분간의 베네치아의 해변에 펼쳐진 해상박물관을 관찰하며, 배에서 내려 아름답게 펼쳐진 베네치아에 도착하니 온갖 잡상인들이 너무나 많았으며, 모조품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으며, 모조품을 사는 사람도 1,500유로(한화 180만원) 벌금을 부과한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아탈리아어:뽄테)는 아치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이드님이 베네치아 뽄테를 보여준다 길래 무엇을 보여주나 했더니 다리가 아닌가!

우리는 도착하여 중국 음식점 “해성”에서 가장 빠른 15분만에 개눈 감추듯 점심을 먹는데 밥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수상택시를 계약하는 가이드님의 말에 선듯 성인 40유로, 12세이하 30유로로 4명에 140유로를 계약을 했다.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검색하니 수상택시를 꼭 타보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도 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탄식의 다리를 지나 두칼레궁전을 지나 산마르코광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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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에서 본 종루 와 두칼레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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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칼레궁전옆 탄식의 다리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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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베네치아 상징탑의 노인과 청년이 번갈아 종을 치는 시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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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의 무덤이 있다는 산마르코 성당]

산마르코성당은 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마르코 유골의 납골당(納骨堂)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 그 후 성마르코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 되었다. 11세기 말에 현재의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이 재건공사에 롬바르디아의 건축가와 석공(石工)이 상부구조(上部構造) 건축에 참가했으며, 800년동안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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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르코성당의 건축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다. 그리스십자형(十字形)의 바실리카로 다섯 개의 동방적(東方的)인 돔을 받치고 있으며, 파꽃형[蔥花形]의 아치와 고딕풍의 천개(天蓋)가 이어진 정면(파사드)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대리석 건축으로 황금빛의 배경을 지닌 모자이크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면서부터 도제(총독)를 비롯한 베네치아 시민(市民)은 동방을 침략할 때마다 이 건축을 장식할 여러 가지 물건과 조상(彫像)·부조(浮彫) 등을 가져오는 습관이 생겨 이 건물은 그런 것들로 장식되었다. 예컨대 정면 위의 회랑(回廊)에 놓여 있는 네 개의 브론즈 말(높이 1.6m)은 고대 그리스시대의 것으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에 옮겨놓은 것을 1204년에 도제가 베네치아로 가져온 것인데 이런 조상이나 부조들은 수없이 많다.

그 후 성마르코(성경의 누가)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성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마르코 성당은 반바지,모자,등산가방등은 전혀 가지고 들어 갈수 없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성마르코 성당에 들어가니 바닥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모자이크양식과 함께 조그만하게 퍼즐 맞추듯 아름답게 수가 놓여져있다.

바닥이 지금까지 28센티미터가 침하가되어 중앙부분은 많이 침하되어 울퉁불퉁하다.

그리고 천정에는 금으로된 모자이크로 장식한 성화들이 은은하게 그려져 있었다.

성마르코(누가)의 납골 무덤이 정면에 쇠창살로 된 곳에 관형식으로 안치되어 있었다.

 

성마르코 성당을 지나 우리는 유리세공업을 하는 건물로 올라가 말과 꽃병을 직접 수작업으로 하여 만드는 장면을 감상하고 유리세공 예술품들을 감상하고 자유시간을 주어 사진촬영과 비둘기 먹이를 주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산마르코 광장을 통과하는데 8개월배를 현지가이드님이 돌아오라 소렌토오페라의 한데목을 불러주었다.

곤돌라를 탑승하기 위하여 유인물과 설명을 잠시 들은 6명씩 탑승하여 산마르코광장을 뒤로하고 1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수상택시를 타고(10명씩) S라인의 대운하인 그란데 운하에 펼쳐진 해상 건축물 양식들을 감상하며, 베네치아 선착장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골목 골목을 누비며 수상택시를 탄후 운하를 빠져오는 순간 전속력을 내어 50킬로를 달리며, 시원한 물살을 가르는 스피드를 보여주며 팬서비스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19시에 버스에 올라 이동하여 20시에 우리가 투숙할 EUROPA Hotel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401, 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