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기(2007~현재)

[경남 남해] 독일마을에는 특별한 전시관이 있다.

여행을 꿈꾸며 2018. 6. 9. 15:30

오늘은 광양의 라벤다 꽃구경을 아침일찍 하고

시간이 심심하고 남해가 궁금해서 부부 드라이브를 떠난다.

아내와 같이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포근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부부는 닮아 간다고 한다.

습관도 닮아가고

먹는 음식도 닮아가고

얼굴의 생김새도 닮아간다고들 한다.

우리 부부도 닮아간다.


남해가는 길 : 창원 ~ 남해고속도로 ~ 광양 라벤다 꽃밭 ~ 남해대고 ~ 독일마을



광양시장을 구경하고 2대째 국수장사를 하는 맛있는 국수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남해대교를 건너서 남해로 진입했다.

독일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이 소요되어 오후 3시가 되었다.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이리 저리 주차장소를 마련하고 독일마을로 내려가려는 찰라....

커다란 아치가 보였다.

옛날에 왔을때는 이런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들어가본다.

그것은 바로 특별한 "남해 파독전시관" 이었다.

70년대 산업일꾼들을 독일에 파견하여 고속도로등 기초시설을 건설하는데 공헌한 분들의 소품과 생활의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 그럼 파독전시관으로 들어가보자


탄광의 갱도 도르레의 모양을 형상화해서 입구를 장식했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9시 ~ 오후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과 설날,추석,신정은 휴무일이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람료는 1,000원/인 으로 전시관 운영에 사용된다고 합니다.



독일로 인해서 경제개발이 시작되고

경부고속도로 등이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탄광 근로선배들로 인해서 전쟁으로 피멍들은 한국이 일어설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입구에 한국과 독일 국기가 나란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면 보람이 되겠습니다.

 


파독 광부들의 역사를 입구에 나열해 놓아서 역사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분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분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파독 간호사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희생으로 인해 한반도는 지금의 경제대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살아서 돌아나오라는 "클릭 아우프" 라는 독일어가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거기에 내가 들어간 느낌으로 감정 이입이 되어갑니다.




독일생활을 하면서 향수를 모아서 귀국하여

전시관에 기탁한 분들도 있습니다.

하나 하나 귀한 물건이었던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버리지 못하고 사용하지도 못했던 것 입니다.





광부들의 암흑을 밝혀준 등잔불...

우리의 시골에서 사용한 등잔불과 비슷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조금 길쭉하게 생긴게 특징입니다.



광부들 엉덩이를 보호해 주었던 가죽보호대입니다.

저 보호대에 의지하여 생명을 연연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해집니다.

 


독일이 선진국이긴 한가봅니다.

우리 지금의 근로시간과 비슷한 주당 43시간으로 그 당시 독일은 인간적으로 대우해준 것 같습니다.

법적인 부분까지도 언급을 한 단체임금협약도 체결하였답니다.

 


밑에 있는 물건들은 인공심장 박동기로

심장이 뛰지 않으면 심장박동기로 사용하여 생명을 구했나 봅니다.



독일의 상징인 개선문입니다.



독일에서 사용하던 악세사리들과

식기류인 포크와 나이프...

거기에 애환들이 담긴 물건들입니다.




우리 파견근로자분들은 독일에서 귀국시킬까봐 열심히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2진, 3진....계속해서 한국근로자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것이죠.

그 선배들이 있었기에 후배들도 달러를 벌어서 한국으로 송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음 문구들이 너무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매년 독일마을에서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분들이 모여서 맥주축제를 연다고 합니다.

독일의 맥주를 가지고 말이죠...




오늘은 여기여서 남해 파독전시관의 추억을 되돌아봅니다.


여기는 파독전시관 출구에 나오면 전망대가 설치가 되어있다.

이 풍경이 독일마을에서 백미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기를 다녀가지 않은 분들은 다시 한 번 방문하여 좋은 추억을 만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