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기(2007~현재)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는 이방인의 인생이 묻어있다.

여행을 꿈꾸며 2018. 4. 20. 15:30

고창 청보리밭에서 출발하여 아래와 같이 가는 길이 멀기에 쉬엄쉬엄 휴게소마다 휴식으로

어르신의 마음을 맞추어 가는 길이 힘든가 봅니다.

나이들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느림보 같이...

기쁨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행복한 하루였음을 추억한다.

천리포수목원 가는 길은 아래와 같다


[천리포수목원 가는길]

창원 ~ 남해안 고속도로(산인) ~ 진주JC ~ 중부내륙고속도로 ~ 장수JC ~ 고창IC ~ 고창청보리밭 ~

서해안고속도로 ~ 해미IC ~ 천리포수목원


천리포 수목원은 이방인의 숨결이 묻어있다.

그 사람은 이 곳 천리포수목원에서 무슨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한국이 그렇게 뭐가 좋길래 자기인생을 이 땅에 묻고자 했는지?

우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를 해본다.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 Carl Ferris Miller)선생님 생애]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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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피츠턴에서 태어났고, 버크넬(Bucknell)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러시아어와 독일어를 할 줄 알았고, 한자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징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1944년 콜로라도 대학의 해군 정보학교 일본어 과정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1945년 4월을 기하여 일본 오키나와섬 미군사령부의 통역장교로 배치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에 대하여 일본군이 무조건 투항을 선언하는 사안을 목도한 그는 이후 1946년,

한국에 연합군 중위로 처음 오게 되었다.

당시 25살이었고, 그 후 다시 1947년 1월 주한미군사령부 사법분과위원회 정책비서고문관으로 지원해 한국으로 왔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시 다시 미국으로 귀국하였고 그 후 1953년 한국은행에 취직해 자리잡을 때까지 전쟁시에

일본과 미국, 한국을 왔다갔다 해야만 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천리포수목원 조성을 시작하여 1979년 민병갈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였다.

그는 서울의 증권사에서 일하면서 수목원 조성에 힘을 쏟았고, 한국과 식물에 대한 공부에 힘을 쏟았다.

천리포수목원은 1979년에 재단이 되었고, 1989년까지 10년 동안 해외 교류 학습을 통해 영국 왕립 원예협회(RHS)

공로메달을 수여받았다.


재단 출범 전 해인 1978년 민병갈은 남해안 답사여행에서 감탕나무(Ilex)와 호랑가시나무의 자연 교잡(交雜)으로 생긴

신종 식물을 발견하였고, 세계에서 한국의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으로 검증되었다.

민병갈은 국제규약에 따라 발견자와 서식지 이름을 넣은 학명 'Ilex × wandoensis C. F. Miller'을 국제학회에 등록했고 한국이름은 '완도호랑가시'로 정했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배양된 완도호랑가시는 종자목록(Index Seminum) 발행을 통한 다국간 종자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퍼져나갔고,

천리포수목원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1978년부터 1998년까지 36개국 140개 기관과 교류 관계를 맺어 다양한 품종의 나무를 들여왔다.

민병갈은 국제적인 교류에 관심이 많아서 우리나라의 환경과 식물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1997년 4월 국제목련학회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고, 1998년 5월에는 미국 수목원이 주축을 이룬 범세계적 학술친목 단체인 HSA의 총회를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2002년 4월 8일, 81세로 숨을 거두었고, 천리포수목원 내에 수목장으로 묻혔다.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사망 후 후임 이사장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을 추대하였고,

2010년 이은복 한서대 명예교수를 이사장으로 추대하여 운영되고 있다.

 

민병갈은 2002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미국 프리덤 재단(Freedoms Foundation)에서 평화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실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우정의 메달을 수상했다.

안타깝게도 이 상훈은 그의 죽음으로 여동생인 준 맥데이드(June MacDade)가 대리수상하였다.

그가 조성한 천리포수목원은 다양한 식물 품종으로 주목받았고 2000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가 지정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Arboritum Distinguished for Merit)', 미국 호랑가시학회(HSA, Holly Society of America)가 선정하는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itum)'이 되었다.








입구를 들어가려는데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입간판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야 수목원이 형성되었으리라 생각하고

귀한 이방인 한 사람의 일생이 이 곳에 새로운 희망으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천리포수목원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쯤 되었다.

여기 천리포숙목원은 오후 5시에 입장을 종료된다.

들어간 사람을 나오기까지 배려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지금은 공익재단으로 바뀌어 입장료로 운영하고 새로운 사업을 꾸며 나가고 있다.


입장료, 성인 9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5000원,

특별할인 6000원이라고 되어있는데 경로우대인 것이다.




호수 주변을 많은 나무와 꽃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특히 우리가 갔을때는 목련축제가 한 참이었으나 냉해를 입어서 올해는 그리 좋지는 않았다.

우리를 처음으로 반긴 것은 수선화의 한 종류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들이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전망할 수 있는 천리포수목원 정망대다.

이 곳에서 전체적으로 많은 뷰를 자랑한다.

한 참을 머무르고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리 만큼 그냥 지나치기 힘든 뷰 였음을 추억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전시실쪽으로 올라오니

아담한 돌탑이 한국미를 자극하는 듯 하다.

이 탑이 여기 수목원의 중심을 잡은 듯...

민병갈 선생님은 여기를 한국의 멋으로 자리하고 픈 심정을 읽을 수 있다.



민병갈 선생님은 수목장으로 이 곳에 묻혀있다.

자기 나라에 묻히지 않고 25살 이후 제2의 고향인 이 곳을 택한 고집이야 말로 코 끝을 자극하여

멍하니 한 참을 생각에 잠기게 만든 순간이었다.

내 라면 과연 민 박사님처럼 그 이방인의 나라에 묻혔을지...?

아무튼 존경하고 사랑함을 표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호가 임산 이름이 민병갈 박사(1921~2002)님 흉상인데...

너무 근엄하게 생긴 모습인데...

나무를 사랑하여 나무들과 결혼한 그 모습이 고고해 보이기도 합니다.



붉은 유럽이질풀 이라고 한다.

특이하고 예쁘게 생겨서 눈이 간다.



수선화의 종류가 상당히 많다.

천리포수목원에는 수선화 필 시기를 맞추어 가서 그런지

아름다운 수선화 엄청 보고 간다.





천리포수목원을 들러보다가 해안가쪽을 바라본다.

앞쪽으로 보이는 섬이 낭새섬...


[낭새섬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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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 보이는 곳은 천리포 해변입니다.

이 곳은 계절마다 해변에 바지락, 굴등이 많이 나오는 청정해변으로 얕은 수심과 고운 모래로 여름철 해수욕장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앞에 보이는 섬이 낭새섬 입니다. 천리포마을 사람들은 이 섬이 닭벼슬을 닮았다고 하여 닭섬이라 불렀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한 민병갈 원장은 낭새섬이라 불렀다.

낭떠러지기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새를 낭새 라고 하는데...바다직바구리 새가 이 섬에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다시 낭새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물이 빠지게 되면 모새의 기적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500미터 걸어가서 2시간동안 갯벌체험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낭새섬은 현재 천리포수목원의 관리지역으로 1980년 초부터 호랑가시나무등 자생상록활엽수를 심기 시작해 복원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너무 사랑했기에...

나무가 있는 곳에 민박사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무야 사랑해"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 곳을 사랑했기에 그렇게 동상으로 표현하여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대대로 물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시주엽나무...

이 나무는 환경에 너무 민감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입니다.

낙타들이 나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낙타의 키만큼만 나 있어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 이후 가시는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식물들은 자연환경과 주변환경으로 인해 진화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아래와 같이 주변에 한옥펜션들이 몇채가 있다.

투숙하고 싶은 고객들은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금액은 조금 비싼편이지만...

20만원 ~ 60만원까지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서해안 낙조를 밴치에 앉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민병갈 박사님께서 즐겨 찾던 곳으로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을 가졌더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런 호사를 누려보고 갑니다.





카페와 전시실을 정면에서 바라봅니다.

호수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관리동이 초가집인 한옥을 연상시킵니다.

그런 민박사님은 정말 한국인으로 살아갔나 봅니다.

곳곳에 한국인의 풍미가 베어있기 때문입니다.



<숨쉬는 뿌리 낙우송>

새의 깃털과 같이 잎이 떨어지는 낙우송...

나무주변을 살펴보면 종유석과 같은 뾰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물이 많은 습지에서 숨을 쉬기 위해 뿌리로서 기근이라고 한답니다.




내일은 튜율립을 맘껏보기로 한 날이니

오늘은 맛보기만 합니다.

이렇게 수목원 구경은 끝이 납니다.

출구로 퇴장하며

가을에 한 번 다시올 것을 기약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