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기(2007~현재)

[경북 경주] 황룡사지에서 느끼는 허무함(2009.10.5 월요일)

여행을 꿈꾸며 2009. 10. 31. 10:13

분황사 주차장에 차를 그대로 놓아두고...

옆으로 산책로로 들어가니 경주 구황동당간지주가 나온다.

이것은 황룡사의 것보다도 분황사의 바로옆의 밭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분황사 당간지주로 보인다는 안내문구와 바닥에 거북이 모양이 있다고 해서 확인하러 밭에 들어가보니

거북이가 밑에서 당간지주를 받쳐들고 있는 모습이다.

황룡사지 절터를 하나 둘 명칭을 생각하며...이리 저리 둘러본다.

아내와 딸아이는 안내판이 설치된 곳에서 이리 저리 둘러보더니 여기 있을터이니...

아들과 동행하여 갔다오란다.

이리 저리 둘러보니 돌로만든 기둥받침대가 이리 저리 흩어져 이 곳이 건물이 세워진 곳이란 흔적만 남아있다.

솔거가 그린 황룡사 금당벽화가 그렇게 없어졌으니 전설로만...

대지만 보더라도 얼마나 큰 규모인가를 알려준다.

아들은 이리 저리 둘러보며 건물에 대하여 물어본다.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니리 재더니 저 그림이 너무 멋질 것 같다 아빠!

그렇게 찍어보라고 하니 몇 장을 찍어준다.

저 만치에서 아내가 불러댄다.

황룡사 옛터옆에 마련되어 있는 코스모스가 허드러지게 활짝피어서 탐나는 차였다.

그래서 코스모스에서 사진 찍고 가자고 하니...

다른 곳에 많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고....

주차장에 걸오나와 다음 코스인 계림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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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룡사지 []

출처:두산백과

1963년에 사적 제6호로 지정되었다. 왕명으로 553년(신라 진흥와 14)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566년에 주요 전당들이 완성되었고, 금당()은 584년(진평왕 6)에 완성되었다.

선덕여왕 14년(645년) 탑의 건조까지 모두 완성된 황룡사는 신라의 호국신앙의 중심지였다.

 

황룡사 경내에는 신라 삼보()의 하나인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으며

이는 당나라 유학 후 돌아온 승려 자장대사의 건의로 백제의 '아비지'에 의해 3년 만에 완성된 신라의 상징물이었다.

현재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에는 탑을 지탱해 주었던 중앙 기둥 주춧돌인 심초석이 남아 있다.


이 절은 신라 대궐인 월성()이 동쪽에 있었는데, 그 창건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이 새로운 궁을 월성 동쪽 낮은 지대에 건립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왕이 새로운 궁 건립을 중지하고 절로 만들게 하여 황룡사라는 사명()을 내렸다고 한다.

국가적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역대 국왕의 거동도 잦았고 신라 국찰 중 제일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신라 멸망 후에도 황룡사는 고려 왕조에 이어져 깊은 숭상과 보호를 받았으며 9층 탑의 보수를 위해 목재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1238년(고종 25)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은 물론 일체의 건물이 불타없어졌다.

황룡사의 건물을 복원하고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복원을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경북 경주시 구황동()에 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