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우륵박물관으로 향한다.
읍내에서 갈려 우륵박물관 먼저 가려고 했으나 나중에 보기로하고 대가야박물관부터 돌았기 때문이다.
들에는 한창 벼농사를 시작하기 위하여 벼의 자양분을 공급해주기 위한 채비인 거름을 뿌리고...
농기구로 밭을 갈아눕히는 농부들의 일이 한창진행중이다.
대가야박물관에서 10분정도 이동하면 우륵기념탑을 지나 다리를 건너 바로 좌회전하여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
200미터쯤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우륵박물관 주차장이 나타난다.
가야금의 거장 우륵이야 말로 대가야에서 신라시대까지 악성으로서 많은 업적과 후배양성에 앞장선 인물인 것을 알았다.
또한 가야금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름과 특징은 자세히 몰랐는데...
우륵박물관에서 가야금의 명칭과 재료들을 자세히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자세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좋은 공부가 되는 장소이니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에게 추천한다.
악성우륵 (출처:대가야박물관 역사자료)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實王) 때 악사로 활약한 가야금의 명인이자 시조이다.
가야국 성열현(省熱縣)에 살다가 가실왕의 부름을 받아 대가야(경북 고령)로 옮겨 궁중 악사로서 가야의 음악과 춤 노래 등을 통합 발전시켰다.
우륵은 당시 전해지고 있던 여러 형태의 현악기를 오늘날과 같은 가야금으로 만들었으며 가야 각 지역의 향토성 짙은 음악을 고급예술로 승화시킨 악성(樂聖)이다.
가야국이 매우 혼란해지자 신라로 망명한 우륵을 진흥왕은 국원(國原:지금의 충주)에 안치시키고 신라의 관료 세 사람(계고, 법지, 만덕)을 파견시켜 음악과 춤·노래 등을 전수하게 하였다.
이후 우륵의 음악과 춤·노래 등은 신라의 궁중음악인 대악(大樂)으로 채택되어 우리 고유음악의 큰 기틀이 다져지게 되었다.
- 계고(階古) - 대나마(大奈麻, 신라 17관등의 10번째)가야금 전수
- 법지(法知) - 대나마(大奈麻, 신라 17관등의 10번째)노래 전수
- 만덕(萬德) - 대사(大舍, 신라 17관등의 12번째)춤 전수
가실왕은 누구인가
대가야(大加耶)말기의 왕으로서 가보왕(嘉寶王)이라고도 한다.가실왕의 생존 연대는 우륵(于勒)과 신라 진흥왕(546~576)과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가실왕은 우리 민족 특유의 악기로 민족의 얼을 담은 음악을 구상한 문화적 성군(聖君)으로,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악기를 가야금의 형태로 통일시키고 우륵으로 하여금 각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담은 12곡을 짓게 하였다.
이는 조선조 세종대왕이 당시 언어와 문자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한 것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업적이다.
12곡의 의미
우륵이 가야의 가실왕을 명에 의해 작곡한 12곡은 하가라도(下加羅都), 상가라도(上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하기물(下奇物),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상기물(上奇物)이다.가실왕이 ‘여러 나라의 방언이 그 성음에 있어서 서로 다르거늘 어찌 획일화할 수 있겠는가’하는 가실왕의 음악관에 따라 당시 가야 각 지방의 향토색 짙은 음악으로 작곡 연주하였을 것이다.
또한, 당시 대가야(경북 고령-상가라도)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이 미치던 지방과 소국의 음악 등을 가야금 음악으로 하나 되게 함으로서 정신적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고령과 우륵
고령지역은 남해안에서 낙동강을 이용해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어 동서남북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하여 교역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고 선진 문물의 흡수도 다른 가야국들에 비해 빨라 5세기 후반 경에는 가야의 여러 소국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성장하였다.
또한, 대가야의 주요 교역품은 합천 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쇠와 안정된 농업 기반을 바탕으로 생산된 농산물 등으로 이를 바탕으로 대가야는 수준 높은 음악 예술을 향유하였을 것이다.
대가야의 가실왕은 이와 같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천재 예술가인 우륵을 통하여 가야국의 문화적 통일을 이루려고 하였다.
고령군청에서 서북쪽으로 인접되어 있는 지역인 쾌빈리(금곡)에는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을 가지고 12곡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륵의 가야금 연주소리가 “정정”하는 웅장한 소리가 났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현재 ‘정정골’이라 부르고 있다.
가야금 (출처:대가야박물관 역사자료)
가야금의 역사
우리나라의 기원 전후 시기에 현악기가 존재하였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유물이 1997년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발견된 현악기이다.
당시 이 지역은 삼한(三韓)가운데 마한(馬韓)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창동에서 나온 현악기는 반쪽이 없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 악기는 보통 서민들이 연주하였다라기 보다는 귀족 이상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실내에서 독주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와 비슷한 형태의 악기 모양이 1997년 경북 경산 임당동 지역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칠 흔적만 남아 있다. 또한 경남 창원 다호리의 무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것이 발견되었다고 보고 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기원 전후의 한반도 남부 지역사회인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에 여러 가지 현악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의하면 변진한에는 슬이라는 현악기가 있었는데 그 모양은 축을 닮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중국의 슬도 아니고 축도 아닌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6세기경 대가야의 가실왕 때 만들어진 가야금은 종전 여러 지역의 현악기를 동일한 크기와 모양으로 하고 줄 수 또한 12줄로 통일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야금의 구성
가야금은 종류에 따라 구조가 다른데 정악을 연주하기 위한 정악가야금과 민속악을 연주하기 위한 산조가야금 두 가지가 있다. 가야금은 악기의 몸통과 12줄, 현을 지탱해주는 안족(雁足.기러기 발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야금 연주 때 오른손이 놓이는 부분에 좌단(坐團). 현침(絃枕). 돌괘(軫棵)등이 있고, 왼손 아래쪽으로 몸통에 줄을 걸기 위한 부들(染尾), 이 부들과 줄의 연결부분인 학슬(鶴膝)이 있다. 정악가야금은 부들 매는 부분을 양 귀와 닮은 양이두(羊耳頭)로 하는데 반하여 산조가야금은 봉황의 꼬리와 같다고 하며 봉미(鳳尾)라고 한다. 산조가야금 뒷판은 소리의 울림을 위한 울림구멍이 있고 아래 부분에 구름의 발과 같다는 운족(雲足)이 있다.
가야금의 종류
풍류 가야금
궁중음악이나 선비들의 풍류음악을 연주하기 위한 가야금으로 정악가야금(正樂伽倻琴) 또는 법금(法琴)이라고 한다. 우륵이 제작 연주한 가야금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풍류가야금이라고 추정된다. 9세기 무렵 통일신라에서 일본 궁중으로 전해져 ‘신라금(新羅琴)‘이라는 이름으로 실물이 전해지고 있다. 풍류가야금은 비교적 느린 아정(雅正)한 음악 연주에 맞아 음색 또한 부드럽고 깊은 울림을 낸다. 풍류가야금은 오늘날 여민락, 평조회상 등의 대편성 관현합주곡과 영산회상, 천년만세, 보허사 등의 줄풍류 편성의 합주음악이나 가곡의 반주음악에 연주된다.
산조 가야금
산조가야금은 19세기 말 민속악의 연주에 맞도록 기존 가야금보다 음역이 높고 빠른 가락들을 연주하기 편하게 개량된 가야금이다. 이 가야금으로 남도 무속음악과 판소리에 영향을 받아 ‘산조(散調)’라는 새로운 음악 양식을 탄생시켜 오늘날 대표적인 음악으로 자리 매김 하였다.21현 가야금
1990년 이후 창작 독주곡이나 국악 관현악에서 다양한 음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21줄의 가야금이다. 연주법에 있어 전통 가야금에서 비중있게 자리한 왼손 농현법이 개량가야금에서는 오른손위주나 양손뜯기 위주로 변화되었다.25현 가야금
25현가야금은 저음 . 중음 . 고음의 선율을 연주를 위한 새롭게 고안된 것으로 1995년부터 활발하게 보급 연주되고 있는 개량가야금이다. 기존 12줄 가야금의 줄 수를 늘려 음역을 폭넓게 하고 몸통의 여음을 풍부하고 길게 울리도록 한 장점이 있다. 현재 창작음악에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가야금 연주세계의 폭을 넓히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18현 가야금
1995년 국립국악원의 요청으로 고흥곤에 의해 제작된 개량가야금으로,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작곡된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 줄 수를 늘려 다향한 음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울림 폭을 넓혔다. 현재는 이 가야금을 연주하기 위해 새롭게 작곡된 곡들의 연주에만 사용되고 있다.가야금 악보
악학궤범
1493(성종 24) 예조판서 성현(成俔)등이 편찬한 악서로서 9권 3책으로 이루어져 있다.조선조 개국 이후 성종 당시의 아악. 당악. 향악 등 음악 전반을 치밀하고 심도 있게 기술되어 이후 음악의 유실을 방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내용은 음악의 사상 및 이론, 여러 제향에 쓰이는 악조(樂調)에서부터 악기의 진설(陳設), 춤의 순서, 악기의 제도, 의물, 관복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기술이 되어 있는 당대 최고의 실용 음악 이론서이다.
가야금의 연원 및 구조 제작에 관한 기록은 7권에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삼국사기 악지
1145년(인종 23)경에 김부식(金富軾)등이 편찬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삼국시대 정사(正史)이다.본기(本紀) 28권(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통일신라 12권), 지(志)9권, 표(表)3권, 열전(列傳)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음악 기록인 악지(樂志)는 권32에 수록되어 있는데 신라음악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백제의 음악 역사와 악기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가야금의 유래와 전승과정 및 곡조 등이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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