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기(2007~현재)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독립의 절규모습을 느끼다(2010.02.27 토)

여행을 꿈꾸며 2010. 3. 6. 12:54

이번 여행은 서울과 인근지역을 거쳐서 강원도에서 마침표를 찍기로 했었다.

그러나 3월1일 일기예보에서 비가온다고 해서 일찍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중에 갈 여지를 남겼다.

 

전날 2월 26일 오후 15시에 출발하여 큰 처남댁인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도착한 시간이 10시가 다되어 도착했다.

인천에서 처남식구들과 함께 서울근교 나들이 계획을 세워본다.

저번에 올라와 가보지 않은 곳을 계획하니...

아내가 서대문형무소, 경복궁, 수원화성, 한국민속촌 등 이렇게 계획을 세워본다.

처남께서는 그러면 서대문독립공원(독립문,서대문형무소), 청와대사랑채, 서울시청옆 덕수궁을 보자고 한다.

그날 저녁의 처남의 안내를 받으며 가보기로 한다.

 

아침 일어나 9시에 계획한 곳으로 인천에서 버스로 움직이니 조금 막힌다.

버스로 서울로 와서 충정로부근에서 내려 도보로 독립공원까지 걷기로 했다.

아이들이 조금은 지루한지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고 뜀박질을 한다.

걸으면서 서울의 경치도 구경한다.

언 20분을 걸으니 시계가 오전 11시 30분을 가르킨다.

독립공원쪽으로 가기전 독립회관터가 나온다.

독립회관터 자리였다는 것을 기준석에 표시해 놓았다.

독립문도 1979년 성산대로를 개설하면서 원래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서 북서쪽으로 70m 떨어진 곳으로 이전,

복원하고 예전자리에는 독립문지라는 표지판을 묻어놓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독립문이 바로 나온다.

고가도로옆에 바로 있어 미관상으로 좋지는 않다.

 

독립문을 통과하여 독립공원으로 들어가니 송재 서재필선생님의 동상이 나온다.

현대인에게 독립의 소중함을 알리는 무언가를 외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옆으로 산기슭에 독립관이 나온다.

독립관은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순국한 분들의 위패를 봉안해 놓았다.

조금 걸어서 올라가니 서대문형무소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입을 즐겁게 해주어야 오늘도 잘 따라 다닐 것으로 생각하며 음료수를 하나씩 물린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입장료가 있다.

어른:1,500원, 청소년:1,000원, 어린이:500원

관람시간 : 09:30 ~ 18:00 (동절기에는 17:00)

 

 

 

 

 ( 독립문 )                                                                                                             (자료:두산백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 안에 있는 문으로 사적 32호이다. 원래는 종로구 교북동(橋北洞)에 있던 것을 1979년 이곳으로 이전하여 복원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32호로 지정되었다.
1896년(건양 1)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 자리에 전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하여 세웠다.
창건 당시의 면적 2,800㎡였으며, 총공사비는 당시 화폐로 3,825원이 소요되었다. 완공일은 1897년 11월 20일이다. 현재의 면적은 2,640㎡이다.

프랑스의 예투알개선문을 본떠서 서재필()이 스케치한 것을 근거로 독일공사관의 스위스인 기사가 설계를 하였다.
공역()은 건축기사 심의석()이 담당하고 노역()은 주로 중국인 노무자들을 고용하였다. 공사비는 주로 기부금으로 충당, 1897년에 준공하였다.

재료는 주로 화강암을 사용하였는데, 구조는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서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문 앞에는 구()영은문의 주초()였던 두 돌기둥이 있다.
1979년 성산대로를 개설하면서 원래 독립문이 있던 자리에서 북서쪽으로 70m 떨어진 곳으로 이전, 복원하고 예전자리에는 독립문지라는 표지판을 묻어놓았다.

 

 

(독립관)

서울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독립공원 안에 있는 독립협회의 건물이다.

원래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옛 모화관(慕華館) 건물을 1897년 5월에 독립협회에서 독립관으로 개축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97년에 다시 지었다.

독립협회의 서재필()·윤치호() 등은 사대주의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모화관의 명칭을 고쳐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독립관으로 명명하고,

그 건물을 독립협회 회관으로 사용하였다. 모화관 옆에 세운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는데, 이것 역시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본래 모화관은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다. 1894년 갑오경장 후에 사용하지 않다가 1897년 독립협회가 건물을 고쳐 집회장소로 사용하였다.

독립협회는 사대주의를 외형적으로 청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민중계몽에 힘썼다

 

 

(서대문형무소)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이 서울에 세운 형무소이다.

현재 그 건물에 독립공원의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대한제국 말기에 지어져 일제강점기 때의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정치적 격변과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고난과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다.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와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배울 수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19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8년 11월 개관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있으며 3·1운동 직후 유관순열사가 투옥되어 숨을 거둔 지하 옥사와 감시탑, 고문실, 사형장, 옥사 7개동, 역사전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관사와 고문실로 쓰이던 역사전시관에는 영상자료실, 강우규 의사의 의거를 재현한 매직비전, 형무소역사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벽관·독방 등의 옥중생활실 등이 있다.

이밖에 사형장 옆에 시신을 몰래 버리기 위해 만든 시구문이 복원되어 있다.

 

 

 

 

 

개인독방으로 암흑의 세계입니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곳으로 틈사이로 쪽빛이 들어옵니다.

 

 

 

 

 

 

 

 

감시창으로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

 

감시창을 내부에서 본모습인데 벽이 두껍기는 두껍네요

 

 

 

재판을 받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네요

 

사형집행을 하는 곳을 재현해 놓았는데...

저기 오른쪽 래버를 당기면 의자가 밑으로 떨어져서 목메이는 사형이 집행된다고... 

 

빠삐옹들 복장을 하고 옥사체험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옆에 지니짚 카메라도 보이네요

 

저기 보이는 곳이 무서운 곳입니다.

바로 사형장입니다.

미루나무가 통곡의 미루나무로 사형당하는 장면들을 지금까지 지켜보는 산증인이라고...

자세히 보면 잔가지들이 많이 나있더군요 아마 슬픔을 표현하고자 그렇게 잔가지들이 지금도 나있는것 같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숨진 지하감옥입니다.

특별한 감옥으로 지하감옥으로 만들어 졌는데 독립운동을 강렬하게 하신분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하고 쓰려져갔나봅니다. 

 

지하감옥의 내부모습인데..빛이없는 그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