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기(2007~현재)

[강원 강릉]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에서 200년전 소리를 듣다

여행을 꿈꾸며 2012. 2. 26. 23:59

우리는 강릉에 도착하여 오후를 계획했는데...

1박2일에서 은지원씨가 찾았던 참소리 축음기박물관에 들르기위해 도착하여

주변을 살피니 손성목선생님 개인이 수집하고 소장한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외국을 130여회에 걸쳐서 미국을 건너다니면서 축음기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래서 손성목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게 평생친구도 없습니다. 애인도 없읍니다. 축음기가 내인생이고 철학입니다"

너무 한 물건에 올인한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는 느낌인데...

칠십평생을 한 곳에 투자하고 정리하고 전시하는 것들이 어려웠을 것이다.

옛날에는 축음기를 몇달의 월급을 모아야 1대 살수 있는 형편이란다.

 

도착하여 입장권을 예매한다.

한 평생 모아놓은 가치에 비하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고맙다는 느낌으로 입장하니...

 

 

 

 

카메라 골동품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여기에서 조금의 눈을 휘둥구레 하면서 대기하니 해설자께서 해설을 하면서 구경을 한다.

많은 골동품들이 지금도 우리와 마주하니 얼마의 시간을 뛰어넘은 것인지...

 

 

 

2~300백년전을 뛰어넘어서 듣는 소리인 것이다.

우리는 저 MD판이 나오기전에 저렇게 구리판에 구멍을 뚫어서 소리를 냈다는게 신기했고..

요즘 저 원리가 계속해서 CD로 이어졌으니 얼마나 소리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진지하게 아이들을 앞으로 보내라고 배려를 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이들이 옛 물건들에서 소리 나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모습들도 2~3세대만 지나면 신기한 골동품으로 변할 것이란 것을 아이들은 알아 갈 것이다.

 

 

 

조금더 발전한 모습이 축음기이다.

축음기는 그래도 저 시대보다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다.

크기도 작아졌고, 또한 현대식 감각에 맞추어 색깔 또한 입혀져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에디슨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손성목 관장 프로필]

손성목 관장이 처음 소리에 관심을 둔 것은 여섯살 때.

아버지한테 생일 선물로 포터블 축음기(컬럼비아 G24)를 받으면서였다.

당시 부친은 원산에서 백화점과 양복점을 경영할 만큼 부유했다.

8세때 6·25가 나자 어린 손성목은 축음기 1대를 등에 지고 가족과 함께 월남할 정도로 애지중지 여겼다.

강원도 속초에 정착한 가족들은 운수업을 키운 부친 덕분에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손 관장은 13세때부터 본격적인 축음기 수집에 나선다.

동네 전파사는 물론 여기저기 수소문을 통해 축음기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찾아가 사들였다.

고장난 축음기를 고치는 기술도 저절로 익혀졌다.

동네 잔치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축음기를 둘러메고 참가해 인기를 독차지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수집한 축음기는 10여대로 늘어났다.

 

군복무를 마친 직후에는 전파사를 경영하면서 수집의 폭을 더욱 넓혔다.

1977년 결혼 후에는 한라건설㈜에 중견사원으로 입사,5년간 중동건설 현장에 근무했다.

이때 휴가기간 등을 이용해 유럽 전 지역을 순회하며 축음기를 구입했다.

귀국할 무렵에는 각종 축음기가 600여점으로 불어났다.

 

그러자 박물관 설립에 강한 애착을 갖는다.

재원 마련을 위해 회사를 그만 두고 강릉 지역에 임대 아파트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다행히 사업에 성공하자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 등을 털어 아프리카부터 유럽,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을 드나들며 골동품 음향기기를 사들였다.

마침내 1992년 11월, 수집품이 2000여점에 이르자 오랜 소망인 ‘참소리 박물관’을 개관한다.

“축음기 종류를 모두 수집해 세계 제1의 축음기 단일 박물관을 만들어 후세에게 물려주겠다는 집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에디슨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발명품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은 바로 참소리 박물관입니다.

이제 에디슨을 만나려면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와야 할 겁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소리를 좇아 세계 어디든 달려간다.

현재 그가 소장하는 각종 축음기만 모두 5000여점, 또한 음반 15만장, 서적 및 관련 자료가 6000여점에 이른다.

손 관장 앞에는 두개의 책상이 있다.

하나는 인류의 과학유산 수집을 위한 책상이고 다른 하나는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발명품을 만나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책상이다.

후자 책상 위에는 인형이나 조각, 장난감 등을 모은 ‘어린이 전시관’과 소리·빛·영상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

즉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마련 계획서가 놓여져 있다.

그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아직도 배가 고프다.

300년을 살아도 수집하느라 매우 바쁠 것”이라며 아직도 강한 수집광으로 역할을 계속수행하고 있다.